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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1권 "종말의 시작"

by 붉은앙마 202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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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고대 로마의 천 년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내며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품입니다. 그 열한 번째 권인 <종말의 시작>은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지나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결정적 순간을 다룹니다. 이 책은 오현제(五賢帝) 시대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중심으로 로마의 운명이 기울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그의 치세와 그 이후의 혼란은 제국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음을 예고하며, 독자로 하여금 로마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종말의 시작의 주요 내용과 특징,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서술 방식이 돋보이는 지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철학자의 황제

종말의 시작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서기 161~180년 재위)의 치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는 스토아 철학자로서 명상록을 통해 후세에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지만, 황제로서의 삶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마르쿠스를 단순한 철학자가 아닌, 제국의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리더로 묘사합니다. 그는 외부의 야만족 침입과 내부의 정치적 불안, 그리고 전염병(안토니누스 역병)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습니다. 책은 마르쿠스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리고 그의 철학적 신념이 통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마르쿠스는 제국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도나우 강변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오노는 그의 이러한 헌신을 강조하며, 그가 로마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녀는 마르쿠스의 한계도 놓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훌륭한 황제였지만 후계자 문제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의 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한 결정은 로마의 쇠퇴를 가속화한 결정적 요인으로 평가됩니다. 시오노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마르쿠스의 이상주의가 때로는 현실과의 괴리를 낳았다고 분석합니다.

로마 쇠퇴의 서막

종말의 시작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마르쿠스의 치세는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빛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로마 제국의 내리막길이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시오노는 로마의 쇠퇴를 단일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정치적 안정의 붕괴, 경제적 부담, 그리고 외부 위협의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특히 콤모두스의 치세(서기 180~192년)는 로마의 황금기를 마감하고 내란과 혼란의 시기로 접어드는 전환점을 상징합니다.

 

시오노는 콤모두스를 무능하고 방탕한 황제로 묘사하며, 그의 통치가 제국의 시스템적 약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합니다. 오현제 시대의 안정은 황제의 개인적 역량과 원로원의 협력, 그리고 속주민의 충성에 크게 의존했지만, 콤모두스는 이러한 균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시오노는 이를 통해 로마가 얼마나 취약한 시스템 위에 서 있었는지를 독자들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녀의 서술은 마치 로마의 운명을 예견하는 예언자처럼 느껴질 만큼 날카롭고도 설득력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서술 방식: 역사와 이야기의 조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역사서와 소설의 경계를 오가는 독특한 매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종말의 시작>에서도 그녀의 서술 방식은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시오노는 엄격한 학술적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독자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녀는 마르쿠스의 내면을 추측하며 그의 고뇌와 철학적 고민을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마르쿠스가 도나우 강변의 추운 막사에서 명상록을 쓰며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독자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닙니다. 시오노는 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구조를 상세히 설명하며, 독자들이 당시의 복잡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로마의 속주 통치 시스템과 군대의 역할, 그리고 황제의 권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이러한 설명을 학술적이면서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아서, 로마의 거대한 시스템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합니다.

로마의 교훈, 현대에 던지는 질문

<종말의 시작>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시오노는 로마의 쇠퇴를 통해 현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로마의 몰락이 단지 외부의 침입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정치적 부패와 리더십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마르쿠스의 후계자 선택 실수는 리더의 결정이 국가의 운명을 얼마나 크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현대의 정치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또한, 시오노는 로마의 다민족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했던 로마의 개방성이 제국의 성공 비결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콤모두스 치세 이후 이러한 개방성이 약화되면서 제국은 점차 분열로 치달았습니다. 이는 오늘날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다문화 사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비판과 한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학계에서는 몇 가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그녀가 전문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사료의 엄격한 검증보다는 서사적 재미를 우선시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종말의 시작에서도 일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주관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쿠스의 후계자 선택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다소 단정적이며,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오노의 글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로마의 매력을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결론: 로마의 황혼을 바라보며

로마인 이야기 11권: <종말의 시작>은 로마 제국의 황금기가 저물고 혼란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고뇌와 콤모두스의 몰락은 로마의 운명을 상징하며, 독자들에게 제국의 흥망성쇠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절묘하게 버무려, 마치 로마의 거리를 걷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역사 애호가뿐만 아니라, 리더십과 정치, 그리고 인간 본성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로마의 황혼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시오노 나나미의 <종말의 시작>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로마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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