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로마의 길, 역사의 대동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닙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의 위대한 인프라와 그 뒤에 숨은 철학을 상징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 제국의 성공 비결을 사회 기반 시설, 즉 인프라를 통해 탐구하는 특별한 여정입니다. 이 책은 시리즈의 전작들이 황제와 정복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10권은 로마의 ‘하드 인프라’(도로, 수도, 다리)와 ‘소프트 인프라’(의료, 교육)를 다루며 로마가 어떻게 천 년 제국을 유지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로마의 하드 인프라: 길과 물의 마법
로마의 인프라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국의 심장박동을 유지하는 혈관이자, 문명을 확산시키는 통로였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도로, 즉 ‘가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로마 가도는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군사적 효율성, 상업적 번영, 문화적 융합을 가능케 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예를 들어, 아피아 가도는 로마의 군대가 신속히 적진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고, 상인들은 이를 통해 물자를 유통하며 제국의 경제를 활성화했습니다.
이 책은 로마 가도의 기술적 완성도도 자세히 묘사합니다. 네 층으로 구성된 도로 구조—최하층의 자갈, 점토와 돌로 이루어진 중간층, 그리고 정교하게 맞춰진 마름돌로 마감된 최상층—는 빗물이 흐르도록 기울기를 주고 배수로를 설계해 1500년이 지난 후에도 사용 가능할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시오노는 이를 통해 로마인의 실용성과 공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수도 역시 로마의 천재성을 보여줍니다. 물을 먼 곳에서 끌어와 도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한 로마의 수도 시스템은 현대적인 상하수도 개념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치안이 확보된 로마에서는 황제가 근위병 없이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로마인의 삶의 질을 높인 ‘사람다운 생활’을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소프트 인프라: 의료와 교육의 인간적 면모
로마의 인프라는 하드웨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오노는 의료와 교육, 즉 소프트 인프라를 통해 로마 사회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합니다. 로마의 의료 시스템은 부유층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가난한 이들은 신전에 기도하러 가는 이원화된 구조를 띠었지만,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된 후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누구나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했습니다. 단, 기독교 신앙을 전제로 한 제약이 따랐다는 점은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에서도 로마는 실용성을 추구했습니다. 로마인은 모든 지역에 동일한 교육 시스템을 강요하지 않고, 지역마다 최적화된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로마가 단순히 군사적 제국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며 융합을 추구한 보편 제국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시오노는 이를 “로마인은 융통성이 있다”며,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 맞춘 정책을 통해 제국의 통합성을 유지했다고 평가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 로마의 개방성과 공익성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인프라를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로 보지 않습니다. 그녀는 로마인의 개방성과 공익성을 강조하며, 이들이 제국의 성공 비결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아 방어를 우선시했지만, 로마는 가도를 뚫어 개방과 교류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로마가 적을 격리하기보다 동화시키는 전략을 택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또한 로마의 인프라를 ‘사람다운 생활을 위한 대사업’(moles necessarie)으로 정의한 로마인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이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나서야 하는 공공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로마인의 통찰을 보여줍니다. 시오노는 이 점에서 현대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지며, 로마의 인프라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영감임을 강조합니다.
책의 매력: 시각적 자료와 이야기의 힘
로마인 이야기 10권은 시리즈 중에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닙니다. 이전 권들이 주로 텍스트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 폼페이의 유적 사진과 같은 풍부한 시각 자료를 포함해 독자들에게 로마의 인프라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화산 폭발로 보존된 폼페이의 도로와 건축물은 로마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타임캡슐과도 같습니다. 시오노는 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낫다”는 철학을 실천하며, 독자들에게 로마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또한, 시오노의 필력은 이 책에서 특히 빛납니다. 그녀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마치 로마의 가도를 따라 걷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반기독교적 시각이나 역사적 왜곡에 대한 비판도 존재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며, 특정 사료를 선택적으로 다루거나 로마를 지나치게 미화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사 에세이로서 독자들에게 로마의 매력을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현대적 시사점: 로마에서 배우는 오늘의 교훈
로마의 인프라는 단순히 고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도시 계획, 교통망, 공공 서비스는 모두 로마의 유산에서 비롯된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가도의 배수 시스템은 현대 도로 건설에서도 참고할 만한 기술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또한, 로마의 융통성 있는 교육 정책은 오늘날 다문화 사회에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정책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시오노는 로마의 인프라를 통해 현대 사회가 공익성을 우선시하고, 개방적이며 실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녀가 인용한 로마인의 묘비 글—“나는 죽지 않고 세계 안에서 살아 있다”—는 로마의 인프라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토대임을 상징합니다.
결론: 로마로 통하는 길, 우리에게로 통하는 길
로마인 이야기 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 제국의 인프라를 통해 그들의 위대함과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는 명작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도로, 수도, 의료, 교육이라는 주제를 통해 로마가 단순한 군사 제국이 아니라, 사람다운 생활을 가능케 한 보편 제국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과 생동감 있는 서술, 그리고 풍부한 시각 자료를 통해 독자들에게 로마의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비록 역사적 엄밀함에 대한 비판이 있더라도, 이 책은 로마의 인프라가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을 되새기게 합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 이 책은 우리를 로마의 심장으로 안내하며, 동시에 오늘의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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