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향한 가시투성이 전쟁: 영국 장미전쟁 이야기

영국의 중세 역사는 왕관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 1455~1487)은 영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꼽힙니다. 이름은 낭만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이 전쟁은 두 가문, 랭커스터(Lancaster)와 요크(York)의 끝없는 권력 다툼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붉은 장미와 흰 장미, 두 상징이 서로의 목을 노리며 펼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사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충성, 배신의 서사시입니다.

장미전쟁의 배경: 왕좌를 둘러싼 불씨

15세기 중반, 영국은 백년전쟁(1337~1453)에서 프랑스에 패하며 국력을 소진했습니다. 헨리 6세(Henry VI)는 랭커스터 가문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나약한 통치와 정신적 불안정은 귀족들 사이에 불만을 키웠습니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과 귀족들의 세력 다툼이 겹치며 왕실의 권위는 바닥을 쳤죠.

 

한편, 요크 가문의 리처드 공작(Richard, Duke of York)은 헨리 6세의 무능을 비판하며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습니다. 리처드는 에드워드 3세(Edward III)의 후손으로, 왕위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웠습니다.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를, 요크 가문은 흰 장미를 상징으로 내걸며 대립은 점점 격화되었습니다. 이 갈등은 단순한 가문 싸움이 아니라, 귀족과 지방 세력, 심지어 외국 세력까지 얽힌 복잡한 정치 게임이었습니다.

전쟁의 시작: 첫 번째 피의 장미

장미전쟁의 첫 포문은 1455년 세인트 올번스 전투(First Battle of St Albans)에서 열렸습니다. 요크 가문이 랭커스터 가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리처드 공작은 잠시 권력을 잡았지만, 헨리 6세의 왕비 마거릿(Margaret of Anjou)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마거릿은 프랑스 출신의 강인한 여성으로, 아들 에드워드의 왕위 계승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모았습니다.

 

1460년 웨이크필드 전투(Battle of Wakefield)에서 리처드 공작이 전사하며 요크 가문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의 아들 에드워드(Edward of York)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1461년 타우턴 전투(Battle of Towton)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 전투는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로, 눈보라 속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에드워드는 헨리 6세를 폐위하고 에드워드 4세(Edward IV)로 즉위하며 요크 가문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뒤바뀌는 왕관: 배신과 복수

에드워드 4세의 통치는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측근 워릭 백작(Earl of Warwick), 일명 ‘왕제조자(Kingmaker)’는 처음엔 요크 가문을 지지했지만, 에드워드의 정책과 결혼 선택에 불만을 품고 랭커스터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1470년, 워릭은 헨리 6세를 복위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4세는 1471년 바넷 전투(Battle of Barnet)와 테크스베리 전투(Battle of Tewkesbury)에서 연승을 거두며 왕좌를 되찾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거릿의 아들 에드워드가 죽고, 헨리 6세도 런던탑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의 장미전쟁은 단순한 전투의 연속이 아니었습니다. 귀족들은 충성을 바꾸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고, 배신은 일상이었습니다. 각 가문의 지지 세력은 지방마다 달랐고, 전쟁은 영국 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리처드 3세와 왕자들의 비극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상황은 다시 꼬였습니다.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어린 왕은 삼촌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의 손에 의해 런던탑에 갇혔습니다.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이 무효라 주장하며 스스로 리처드 3세(Richard III)로 즉위했습니다. 런던탑에 갇힌 두 왕자,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은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고, 이 사건은 ‘탑의 왕자들(Princes in the Tower)’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리처드 3세는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으로, 그의 통치는 끊임없는 반란과 불신 속에서 흔들렸습니다. 특히, 헨리 튜더(Henry Tudor)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며 그의 운명은 급변했습니다.

보스워스 전투와 튜더의 등장

헨리 튜더는 랭커스터 가문의 먼 친척으로,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1485년, 그는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상륙해 보스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에서 리처드 3세와 맞붙었습니다. 이 전투는 장미전쟁의 클라이맥스였습니다. 전투 중 리처드 3세는 용맹하게 싸웠지만, 그의 부하 스탠리 가문이 배신하며 헨리 튜더에게 승리를 안겼습니다. 리처드 3세는 전사했고, 그의 왕관은 전쟁터의 가시덤불에서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헨리 튜더는 헨리 7세(Henry VII)로 즉위하며 튜더 왕조를 열었습니다. 그는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와 결혼해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하나로 묶으며 전쟁을 종결지었습니다.

장미전쟁의 유산

장미전쟁은 약 30년간 영국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수많은 귀족 가문이 몰락했고, 전통적인 봉건 체제는 약화되었습니다. 대신 헨리 7세는 중앙집권적 왕권을 강화하며 근대 영국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 전쟁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특히 리처드 3세를 통해 문학적으로도 재조명되었고, 현대에는 왕좌의 게임 같은 작품에 영감을 주며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쉽니다.

 

장미전쟁은 단순한 왕위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충성, 야망, 그리고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 거대한 드라마였습니다.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서로 얽히며 피로 물든 이 시기는 영국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오늘날까지 우리를 매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