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Liz Truss) 전 영국 총리의 사임은 2022년 가을, 영국 정치와 경제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녀는 단 45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며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을 기록했죠. 트러스의 사임 배경에는 그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대규모 감세안과 그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헤지펀드들이 영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며 시장을 뒤흔든 사건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트러스 총리의 사임에 이르게 된 경제적 배경을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1. 트러스의 감세안: 대처의 환생을 꿈꾸다
리즈 트러스는 2022년 9월 6일, 보리스 존슨의 뒤를 이어 영국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그녀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연상시키는 강한 자유시장주의 철학을 내세웠죠. 트러스는 세금을 낮추고 정부 지출을 줄여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대처리즘(Thatcherism)’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정책을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핵심 공약은 바로 대규모 감세안이었어요.
2022년 9월 23일, 트러스 정부는 재무장관 쿼시 콰텡(Kwasi Kwarteng)과 함께 소위 ‘미니 예산(Mini-Budget)’을 발표했습니다. 이 예산안은 약 450억 파운드(한화 약 72조 원) 규모의 감세안을 포함했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고 소득세율 인하: 연소득 15만 파운드 이상 고소득층의 세율을 45%에서 40%로 낮춤.
- 법인세 인상 계획 철회: 기존 19%에서 25%로 올리려던 법인세율을 동결.
-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2023년부터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인하.
- 기타 세금 감면: 주택 거래 시 취등록세 감면 등.
트러스는 이 정책이 부자와 기업의 투자 여력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conomics)’를 신봉했죠. 하지만 문제는 이 감세안이 실행되기에 영국의 경제 상황이 최악이었다는 점입니다.
2. 경제적 배경: 폭풍 전야의 영국
트러스가 총리로 취임했을 때, 영국 경제는 이미 여러 악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22년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치솟던 시기였죠. 영국은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 고인플레이션: 2022년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0.1%까지 치솟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은 난방과 식사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죠.
- 재정 부담: 영국 정부의 부채는 GDP의 약 100%에 육박했고, 재정 적자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 파운드화 약세: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화 가치는 불안정했고, 글로벌 달러 강세로 추가 압박을 받고 있었어요.
- 에너지 위기: 러시아의 가스 공급 감소로 유럽 전역이 에너지 가격 폭등에 시달렸고,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러스가 감세안을 발표한 건, 비유하자면 불타는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죠. 감세는 세수 감소를 뜻하고, 이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거나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트러스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지만, 시장은 이 계획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3. 국채 시장의 폭풍: 헤지펀드의 매도 공세
트러스의 감세안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국채 시장의 반응이었습니다. 감세안 발표 직후, 투자자들은 영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할 것이라 예상했어요.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공급 과잉으로 국채 가격은 하락하고, 반대로 국채 금리(수익률)는 상승합니다. 이건 경제학의 기본 수급 원리죠.
헤지펀드와 기관 투자자들은 이 상황을 재빠르게 간파했습니다. 특히, 영국 국채(길트, Gilts)를 대량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은 국채 가격 하락(즉, 금리 상승)을 예상하고 대규모 매도에 나섰어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요인이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 파운드화 폭락: 감세안으로 재정 적자 우려가 커지자 파운드화 가치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2022년 9월 말, 파운드-달러 환율은 한때 1:1에 근접했죠. 이는 영국 자산의 매력을 떨어뜨렸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국채를 팔고 떠났습니다.
- 연기금 위기: 영국 연기금들은 국채를 담보로 한 파생상품(LDI, Liability-Driven Investment)을 활용해 자산을 운용했어요.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연기금들은 추가 담보를 제공해야 했고, 이를 위해 국채를 급히 매도하면서 시장에 매도 압력이 가중됐습니다.
- 시장 패닉: 헤지펀드들은 국채 금리 상승을 예측하고 숏 포지션(가격 하락에 베팅)을 취하며 시장 혼란을 부채질했어요. 일부 분석가들은 이를 ‘시장의 반란’이라 불렀죠.
결과적으로,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9월 초 3%대에서 10월 초 4.5%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는 국채 가격의 급락을 의미했고, 영국 정부의 차입 비용은 급등했죠. 이 모든 혼란은 트러스의 감세안 발표 이후 불과 며칠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4. 잉글랜드은행의 긴급 개입
국채 시장이 붕괴 직전으로 치닫자, 잉글랜드은행(BOE)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긴급히 개입했습니다. 원래 BOE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양적 긴축(QT)을 추진하던 중이었어요. 하지만 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BOE는 반대로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QE)를 재개했죠. 2022년 9월 말, BOE는 약 650억 파운드 규모의 국채 매입 계획을 발표하며 시장 안정화를 시도했습니다.
이 조치는 연기금 파산을 막고 국채 시장을 안정시켰지만, 트러스 정부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쳤습니다. 시장은 트러스가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고, 보수당 내부에서도 그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어요.
5. 정치적 후폭풍과 사임
트러스의 감세안은 경제적 혼란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도 불러왔습니다. 감세안 발표 후 보수당 지지율은 21%까지 급락했고, 노동당은 54%로 치솟았죠. 이는 1997년 토니 블레어 시절 이후 가장 큰 격차였습니다. 당내에서도 트러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어요.
트러스는 위기를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녀는 10월 3일 부자 감세안을 철회했고, 10월 14일에는 쿼시 콰텡 재무장관을 경질했죠. 새 재무장관 제러미 헌트(Jeremy Hunt)는 트러스의 감세안을 사실상 전면 폐기하며 긴축 중심의 예산안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트러스의 리더십은 완전히 무너졌어요. 10월 19일에는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까지 사임하며 내각은 붕괴 직전이었죠.
결국, 2022년 10월 20일, 트러스는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사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경제적·국제적 불안정 속에서 공약을 지킬 수 없었다”며 물러났죠. 재임 45일 만의 퇴진은 영국 역사상 최단 기록으로, 이전 기록인 조지 캐닝의 119일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6. 헤지펀드의 역할: 과연 주범이었나?
헤지펀드의 국채 매도 공세는 분명 시장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사태의 ‘주범’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헤지펀드는 시장의 신호를 읽고 이익을 추구하는 플레이어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트러스의 감세안이 영국 경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데 있었죠. 감세안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고, 이는 국채 금리 급등과 파운드화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헤지펀드의 매도는 이 위기를 증폭시켰지만, 불씨를 지핀 건 트러스 정부의 정책 실책이었습니다.
7. 트러스 사임의 교훈
트러스의 사임은 경제 정책이 시장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대처의 성공 사례를 재현하려 했지만, 1980년대와 2022년의 경제 환경은 완전히 달랐죠. 고인플레이션과 재정 위기 속에서 감세는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정치적 몰락을 불렀습니다.
트러스 사태는 또한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 조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웁니다. BOE는 긴축을 추진하던 중에 트러스의 감세안으로 혼란에 빠졌고, 이는 영국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냈죠. 이후 리시 수낙 정부는 재정 안정화를 우선하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맺음말
리즈 트러스의 사임은 감세안이라는 한 방이 불러온 경제적·정치적 대혼란의 결과였습니다. 헤지펀드의 국채 매도는 시장의 패닉을 키웠지만, 사태의 뿌리는 트러스 정부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철의 여인’이 되려 했지만, 시장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단 45일 만에 무너졌죠. 이 사건은 경제 정책이 신중해야 함을, 그리고 시장은 결코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세계 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 지형 및 지리: 다채로운 자연과 역사적 요충지 (0) | 2025.03.27 |
---|---|
독일 지형 및 지리: 다채로운 자연환경과 지역적 특징 (0) | 2025.03.27 |
미국의 지형과 지리: 광활한 대륙의 다채로운 풍경 (0) | 2025.03.27 |
영국의 지형과 지리: 역사와 문화를 빚어낸 다채로운 풍경 (0) | 2025.03.27 |
일본 지형과 지리: 매혹적인 섬나라의 다채로운 풍경 (0) | 2025.03.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