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속 싸움꾼? 폭력성도 유전될까?

폭력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주제입니다. 누군가는 화가 치밀 때 주먹을 휘두르고, 또 누군가는 차분히 대화를 선택하죠.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폭력성이 유전자에 새겨진 운명일까요, 아니면 환경이 만든 결과일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호기심을 넘어 윤리,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까지 얽힌 뜨거운 감자입니다. 오늘은 폭력성과 유전의 관계를 뇌과학적 관점에서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폭력의 씨앗, 유전자에 있을까?

폭력성이 유전된다는 주장은 꽤 오래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특정 유전자가 사람을 더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연구들이 하나둘 발표되면서 이 논쟁은 더욱 불붙었죠. 대표적인 예로 MAOA 유전자, 일명 "전사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 유전자는 뇌에서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데, 특정 변이가 있으면 충동 조절이 어려워져 폭력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2002년 한 연구에서는 MAOA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어린 시절 학대를 겪었을 때 성인이 되어 폭력적 행동을 보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자 하나가 폭력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전자는 퍼즐 조각일 뿐, 그 조각이 어떻게 맞춰지는지는 환경과 상호작용에 달려 있죠. 예를 들어, MAOA 변이가 있더라도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폭력성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변이가 없어도 극단적인 스트레스나 학대 속에서 자라면 폭력적 성향이 나타날 수 있죠. 유전자는 가능성을 열어줄 뿐, 필연적인 운명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뇌 속 폭력의 무대

이제 뇌과학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폭력적 행동은 뇌의 특정 영역과 신경전달물질의 복잡한 춤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편도체(amygdala)는 폭력의 무대에서 주연배우로 꼽힙니다. 전전두엽은 이성적 판단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데, 이 부위가 덜 활성화되면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워집니다. 반면 편도체는 공포와 분노 같은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하죠. 이 둘이 균형을 잃으면 폭력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흥미롭게도, 폭력적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편도체가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전전두엽이 약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예를 들어, 2015년 한 연구에서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편도체가 과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건 마치 뇌가 "위협이다! 싸워!"라고 외치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것과 비슷하죠. 게다가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도 충동성을 높여 폭력적 행동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뇌의 작동 방식은 유전자 탓일까요? 부분적으로는 맞습니다. 유전자는 뇌 구조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조절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닙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덕분에 환경, 학습, 심지어 명상 같은 활동이 뇌의 연결을 바꿀 수 있죠. 즉, 유전적으로 폭력적 성향이 있더라도 뇌를 "재교육"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환경, 폭력의 진짜 조종사?

유전자와 뇌가 폭력의 퍼즐 조각이라면, 환경은 그 퍼즐을 완성하는 조립공입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특히 중요하죠. 학대, 방치, 또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뇌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이 과민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게 만들어, 뇌의 감정 조절 회로에 장기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한 연구는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이건 단순히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물리적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학대는 편도체를 과도하게 활성화시키고 전전두엽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죠. 결과적으로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작은 자극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사회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난, 차별, 또는 폭력적인 문화를 접하며 자란 사람들은 공격성을 "생존 도구"로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유전적 요인이 없더라도 폭력적 행동이 강화될 수 있죠. 반대로,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자란 사람은 유전적으로 충동적 성향이 있더라도 이를 억제하는 법을 배웁니다.

유전과 환경의 줄다리기

결국 폭력성은 유전과 환경의 끝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형성됩니다. 유전자는 폭력의 씨앗을 뿌릴 수 있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느냐는 환경에 달려 있죠. 뇌과학적으로 보면, 유전자는 뇌의 기본 설정을 제공하지만, 환경은 그 설정을 조정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MAOA 유전자 변이가 있는 사람이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면 뇌의 충동 조절 회로가 약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면 폭력성은 잠잠해질 수 있죠.

 

이 줄다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선택지입니다. 뇌는 고정된 하드웨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스템입니다. 심지어 성인이 된 후에도 치료, 교육, 심리적 개입을 통해 폭력적 성향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지행동치료(CBT)는 충동 조절 능력을 강화해 뇌의 감정 회로를 재조정할 수 있죠. 명상이나 운동 같은 활동도 전전두엽을 활성화해 감정 조절을 돕습니다.

폭력, 운명이 아닌 선택

폭력성이 유전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폭력의 가능성을 열어놓지만,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느냐는 뇌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달려 있습니다. 뇌과학은 우리에게 폭력의 기원을 이해할 단서를 주지만, 동시에 희망도 줍니다. 유전자와 뇌가 고정된 운명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선택과 노력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죠.

 

폭력은 인류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만, 그 그림자를 비추는 빛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유전자가 싸움을 부추긴다 해도, 우리는 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뇌가 분노를 외친다 해도, 우리는 숨을 고르며 이성을 찾을 수 있죠. 결국 폭력성은 유전될 수 있지만, 평화도 배울 수 있는 선택입니다.